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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

개관1주년 기념전 테크놀로지의 명상 - 철의 연금술

  • 전시기간 2010-12-09 ~ 2011-03-27
  • 전시장소 제3,4 전시장 및 로비
  • 전시작품 입체, 설치
  • 참여작가 김병주, 김연, 김지훈, 문병두, 박준선, 신치현, 심병건, 유봉상, 이윤복, 이재효, 정광효, 정욱장


   포항시립미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테크놀로지의 명상 - 철의 연금술 》전은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12명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유봉상, 박준선, 정욱장, 김지훈, 이재효, 정광호, 심병건, 신치현, 김병주, 이윤복, 김 연, 문병두로서 모두 금속을 재료로 삼아 입체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마다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데에 노력해왔는데 그 대표적인 시설 가운데 하나가 도립 혹은 시립 미술관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에 모든 인프라스트럭처가 집중되어있는 상황에서 문화시설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미술관과 같은 시설들이 지역에서 새롭게 개관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공간을 운영할 전문 인력과 수준 높은 내용이 별로 없이 시설만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 미술관은 시설의 확충과 함께 그 공간에 담아내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여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지역의 미술관이 갖는 또 다른 고민은 풍부한 내용 속에서도 어떻게 타지역과 다른 자기 지역만의 특색을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새로 생긴 미술관이지만 포항시립미술관의 경우에는 지역 내에 세계적인 철강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이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있다는 특징을 살려 철과 관련된 작품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키는 것이 스스로를 유사 기관의 시설들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기획되는《테크놀로지의 명상-철의 연금술》전은 철이라는 소재의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 예술적으로 해석하기 쉽지 않은 산업적 소재라는 인식을 넘어서서 동시대를 살아가며 금속 조각 작품을 해오고 있는 작가들의 미학적 해석과 예술적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전시를 지향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이러한 주제와 개념이 반영되는 작품으로서 인간과 철이라는 재료 사이의 오랜 연관성과 친밀성을 천착하고 철이라는 소재가 갖는 일반적인 물성과 차가운 느낌을 넘어서서 철이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원래 철은 대부분의 경우 서양의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하는 기술과 역동성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조각 분야에서 이미 금속 소재가 사용되어 왔다. 서양의 경우 그리스 시대부터 청동을 재료로 하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만들어져 왔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려시대의 철불들이 적지 않게 주조되었었다. 그뿐 아니라 근대 이전의 공예 분야에서는 장신구와 무기류, 식기류 등에서 각종 금속들이 폭넓게 사용되어왔으며 그러한 흔적들이 세계 곳곳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 주요소장 유물로서 보존되고 있다.

근대에 들어와 용접기법과 합금기법이 발달하면서 철은 보다 폭넓게 우리 생활에 응용되었으며 이전보다 더 쉽게 이러한 재료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용접기술의 발달은 산업적인 수요 이외에도 20세기 유럽을 휩쓴 두 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군사적 산업에서 요구되는 기술로서 급속하게 발전된 면이 있다.
서양 현대미술사에서 철을 재료로 작품을 하였던 작가 가운데에는 러시아의 화가 겸 조각가로서 제 3 인터내셔널 기념비를 제작한 블라디미르 타틀린, 러시아 출생의 미국 조각가로서 모스크바 구성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나움 가보와 앙트완 펩스너, 쇠와 강철을 사용한 무한주 등의 작품을 남긴 콘스탄틴 부랑쿠지, 러시아 출생의 프랑스 입체주의 조각가 오싶 자드킨과 자크 립치츠,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을 비롯하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작가들이 일찍이 철과 브론즈 등의 금속을 재료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철은 불상 뿐 아니라 일찍이 금속활자의 주조 등의 문화적 생산 활동에도 사용되었었다. 현대미술에서 철의 사용을 살펴보면 지금 이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경기도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0주기 추모전이 열리고 있는 송영수의 작품을 비롯하여 그의 스승인 김종영, 원로작가 윤영자, 최만린 등 셀수 없이 많은 작가들이 1900년대 들어서서, 특히 용접 기법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철을 소재로 다양하게 작업해 온 적을 알 수 있다.


철강산업의 대표도시 포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적 문화도시로서의 가치 발굴과 철이 지니는 물성을 미술의 언어로서, 해석한 작품을 통해 개관1주년 기념의 의미를 관람객들과 되새겨 보고자 마련된 이번 전시는 작품의 주제보다는 재료에 초점이 맞춰지는 만큼 출품작 사이의 공통적인 주제를 도출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참여 작가들의 대부분은 철의 물성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부각하거나 역설적 표현을 시도하는 작품들도 있어서 철이라는 소재를 비교적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철이라는 소재가 갖는 무거운 이미지를 탈피하여 철사나 못 혹은 철망 등을 이용하여 선적인 드로잉이나 선적 구조의 공간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로는 정광호, 유봉상, 문병두, 김병주, 박준선, 정욱장 등을 들 수 있다.

정광호는 철선과 구리선 등을 짧게 자르고 그것들을 용접 방식으로 이어 붙여 나뭇잎이나 항아리 등의 형상을 재현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입체적인 조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3차원의 공간을 대상으로 철선을 가지고 그려내는 드로잉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정광호의 작품이 차지하는 예술적 좌표는 회화와 조각이 만나는 접점의 어딘가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조각이 가진 물리적 무게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조각의 전통적인 범주를 뛰어넘어 비(非)조각적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시도해오고 있다.

유봉상은 못을 이용하여 판자나 알루미늄 판 위에 무수히 많은 ‘못박기’를 한다. 그것은 마치 액정 화면의 픽셀이나 점묘화처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다시 형태가 이루어지는 회화 작업의 첫 단계처럼 보인다. 유봉상이 박아놓은 못들은 가까이에서 볼 때는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추상적인 집적의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점차 작품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우리의 시각에는 숲이나 바다 등의 재현적인 이미지가 못의 머리 부분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못의 머리 부분을 그라인더로 연마하여 광택을 내도록 함으로써 판자에 가깝게 박힌 부분의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금속성 물체의 광택을 드러아게 만들고 이러한 작은 광택이 모여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작품은 못의 표면에 반사되는 빛의 작용과 관람자의 시점의 이동에 따라 이미지가 부유하듯 미세하게 변화하는, 움직이는 그림 혹은 조각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문병두는 철선이나 스테인리스 스틸을 용접하여 동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상은 실물처럼 충실하게 재현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대바구니처럼 안이 들여다보이고 우리의시선과 공기가 침투할 수 있는 텅 빈 속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육체 또는 동물들은 생명과 에너지 등의 주제와 연관되며 생명체의 순환과 변용, 자연에 대한 경의 등을 담고 있다. 문병두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작은 우주, 종의 구분이 없는 원시 이전의 세계라고 말한다.

김병주는 사물함이나 문, 벽의 뒤편 등 가려진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기 위하여 공간을 드러내보이는 작업을 한다. 건물을 중심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간의 경계에 관심을 집중하여 이러한 공긴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철선을 이용한다. 마치 철망처럼 짜여진 구조물은 건물의 윤곽을 유지하면서도 우리의시선이 그 사이사이의 공간을 침투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선의 교차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빛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인접한 구조물에 투사함으로써 현실의 구조물인 건물이 외부의 물질 뿐 아니라 그것의 그림자까지도 건물 외벽에서 처단하는 것에 비하여 김병주의 작품에서는 공간의 침투와 중첩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가속화하는 현대사회에서의 개체간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박준선은 철망을 이용하여 시선의 문제를 천착한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현대 사회의 통제의 네트워크 안에서 사람들은 현란한 이미지를 구경하고 즐기기 위해서 통제에 자발적으로 협조한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부추기는 수많은 소비 상품에 대한 현란한 이미지에 시선과 관심을 빼앗김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통제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보는 것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권력에 의해 기획된, 보여주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정욱장은 철선을 얼기설기 엮어내는 방식으로 인물상을 창조한다. 작가는 몇 해 전 통영시에 이순신장군 동상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공공 조형물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견고한 주물형식의 인물상과는 다르게 이번에 출품된 작품에서는 가볍고 공간을 투과하는 인물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물의표현은 표정을 포함한 디테일의 표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므로 사실적 재현보다는 상징적 암시와 보는 이들의 연상과 기억에 의존하여 소통될 수밖에 없다. 정욱장의 선적 인물상은 철조 조각의 무거운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경쾌함을 수반한다.

철을 다루는 대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재료에 열을 가하고 그것을 두드려 작가가 원하는 형상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단조 기법과 표면을 다듬는 연마 기법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기법을 위주로 작업한 작가들로는 김연, 김지훈, 이재효, 심병건, 이윤복 등을 들 수 있다.

김연은 빛의 작용에 주목한다. 강물이나 바닷물의 파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효과를 보여주기 위하여 작가는 스텐레스 스틸이나 알루미늄 표면을 두드려 빛의 난반사 효과를 낸다. 빛과 물, 하늘과 같은 자연의 요소에 주목하는 작가는 이러한 자연 현상을 통해 몽환적인 환상과 자아의 내면을 향하는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이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얻어내기도 한다. 여성적인 감수성을 작품에 투영하여 관람객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정서가 철이라는 물질의 속성을 반전시키고 확장시키는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지훈은 주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단조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동물의 뿔을 형상화하는 작업에 집중하여 온 작가는 뿔을 화려함, 권력, 위협 등의 개념과 동일시하며 인간의 과시적이고 공격적인 속성을 고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들은 방어적 태도와 고립을 유발시키며 상처를 남기게 된다. 김지훈의 작품은 동물의 뿔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스테인리스 스틸의 강하고 차가운 성질과 연결시켜 재료적 특성을 잘 살리는 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재효는 나무에 못을 박아 넣은 후 그 못을 휘어서 붙이고 탄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이렇게 집적된 못을 재료로 하여 원형이나 이것을 변현한 둥근 형태를 위주로 기하학적 형태를 만든다. 이렇게 구부러진 못들은 그라인더로 연마되면서 철의 내면에 감춰졌던 속살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무언가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하거나 또는 해석이 불가능한 어느 종족의 글씨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못이라는 재료의 속성을 극대화하고 원재료가 드러내지 않았던 새로운 질감과 조형미를 보여준다.

심병건은 프레스를 이용하여 철판과 스테인리스 스틸 등을 구기는 작업을 한다. 모 평론가는 이러한 심병건의 작업을 ‘프레스 드로잉’이라고 부르는데 프레스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에 따라 철판의 구겨짐의 정도가 다양하게 드러남으로써 작품의 조형성을 획득하게 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불규칙하게 구겨지면 표면광택이 묘하게 드러나며 사물을 반사하는 경우에도 요술거울처럼 변형된 상을 비추게 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심병건은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하고 표면에 반사되는 이미지의 변형을 통해 새로운 조형성을 개척할 수 있게 된다.

이윤복은 금속판을 자르고 망치로 두드려 형태를 만든 후 용접하여 붙이는 노동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탄생시킨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작품에 표면을 연마하여 광택과 반사가 이루어지게 만든다. 이렇게 만든 작품은 표면의 광택 효과로 인해 작품의 재질을 잠시 잊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 앞에서 관람자가 황홀한 환상에 빠져들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은 정신과 육체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몸의 아픔을 느끼면서 자고, 그리고 일어난다......나에게는 작업의 과정도 작품의 일부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이윤복은 철과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와 투철하게 싸우면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치현은 사물과 인체의 구조를 일정한 유니트로 분석하고 그것을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방법으로 재현하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모든 대상을 하나의 구조물로 보고 그것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반복적으로 쌓아가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지극히 기계적이므로 철을 재료로 제작하는 작가의 이러한 작품에서는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배제되고 대상이 물질로 치환되는 몰개성적이고 몰감성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관람자로 하여금 인간의 감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번 전시에 출품한 12명의 작가들은 철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면서 자신의 예술관과 인생관, 그리고 우리의 삶을 둘러싼 우주와 자연의 현상에 대응하는 작업을 폭넓게 펼쳐주고 있다. 작가에 따라서는 철을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그 자체로서 작가가 파고 들어가야 하는 물성의 탐구 대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철이 자신들의 예술 창작의 과정에 동반하는 반려자처럼 여기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항시립미술관의 개관 1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테크놀로지의 명상 - 철의 연금술 》전이 철이라는 재료의 산업적 속성을 넘어서 예술의 영역에서도 비중 있고 의미 깊게 이용될 수 있는 재료라는 인식을 높이고 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 적용되어 관람객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잘 자라매김하기를 빌어본다.                                                        

                                                                                                                  하계훈(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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