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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

우웨이산특별전-문심주혼

  • 전시기간 2014-10-17 ~ 2015-01-04
  • 전시장소 1, 3, 4 전시실
  • 전시작품 조각, 서예, 사진 60여점
  • 참여작가 우웨이산(吳为山)


포항시립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이하여 중국의 대표적인 인물조각가 우웨이산(吳爲山)의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우리 미술관은 개관 이후 스틸 아트 뮤지엄(Steel Art Museum)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시화하기 위하여 스틸 작품과 관련된 기획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 ‘우웨이산(吳爲山)-문심주혼(文心鑄魂)’은 ‘시인의 마음으로 영혼을 불어넣어 주조한다.’라는 뜻으로, 작품제작에 임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을 가장 잘 표현한 전시제목이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만남,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물론 뛰어난 시각과 풍부한 감성을 지닌 우웨이산의 예술정신(藝術精神)을 알아볼 수 있다. 우웨이산의 대표작품으로 구성된 특별전은 전시장별로 중국 성인(聖人)과 가족ㆍ여인ㆍ어린이, 난징대학살기념관 모형 등으로 구분하여 배치하였다. 특별히 이번 전시작품 중에서 독립운동가 고(故)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과 포스코(POSCO) 고(故) 박태준(朴泰俊, 1927~2011) 명예회장의 조각을 통해 ‘민족정신’과 ‘청암사상’을 새겨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웨이산 작품의 외형적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형태의 지속적인 변화이다. 그는 대상의 사실적인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재미(內在美)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록 수려한 표면의 수사가 없어도 대상의 정신과 본질을 파악하여 작가의 개성을 불어넣음으로써, 그 특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표현한다. ‘위대한 문명의 후계자’, 우웨이산 예술의 바탕에는 중국예술의 유구한 역사 속에 강조되어온 ‘사의(寫意)’가 자리하고 있다. ‘상외지상(象外之象)’의 미학이다. 그는 대상의 형태를 낳게 하는 힘의 원천을 알고 있다.

우웨이산(吳爲山, Wu Weishan)은 1963년 장쑤성(江蘇省)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6년과 1976년 사이에 일어났던 ‘중국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격동기를 보면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정에서 자란 우웨이산은 17세에 장쑤성 남부에 있는 우시(無錫) 후이산(惠山)에서 전통적인 도자 인물조각을 3년간 공부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지식과 전통의 맥(脈)은 살아 있었다. 특히 전(前) 수도인 남경(南京)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인 아픔 속에서도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며 이곳에서 아카데미 조소 수업을 받았다. 1987년 난징(南京)사범대학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北京)대학교 대학원,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오늘의 인물조각가 우웨이산을 만들어준 계기는 1992년 3월에 중국에서 서양미술의 첫 번째 주요 전시회 중 하나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작품과의 첫 접촉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우웨이산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입맞춤(Le Baiser)’ 등 113점의 조각과 드로잉, 사진을 보면서 충격과 함께 앞으로 중국에서의 전통적인 인체조각에 대한 변화와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인식했다. 그것은 하나의 계시였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La Porte de l’Enfer)’ 맨 위에 배치된 조각으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관람객의 시선을 의식하여 큰 머리와 어깨, 팔 등이 다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크다. 이러한 로댕의 인체비율의 부조화는 우웨이산에게 강한 친화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그는 1996년 유럽 여행을 통하여 책에서만 봐 왔던 서양미술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 중요한 깊이를 이해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1988년 미국에서 귀국한 우웨이산은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오랫동안 중국예술에서 강조되어 온 ‘전신(傳神)’과 ‘사의(寫意)’를 중시하며 자유롭게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적으로 대상을 표현한 것을 ‘형사(形似)’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예술은 형사보다는 대상 뒤에 숨어 있는 내용을 표현하길 요구한다. 이것이 ‘신사(神似)’, ‘사의(寫意)’이다. 대상의 외형에 담긴 내재적인 정신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중국예술의 중심에는 형사를 초월하여 신사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여겼으며, 서양과 달리 중국미학은 바로 형상을 초월한 ‘상외지상(象外之象)’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정신은 위진(魏晉)시대 사혁(謝赫, 500~535년경)의 ‘육법(六法)’ 중 작품에 대한 총체적 요구이며, 최고의 예술적 경지를 말한다. 또한, 북송(北宋, 960~1126)시대의 곽희(郭熙)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림 속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풍경 밖의(本質) 뜻(景外之意)’과 실제로 그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뜻밖의 묘(意外之妙)’, 즉 ‘의경(意境)’을 갖추어야 한다고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말한다.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의 본질을 강조하여 중국예술에서 소중하고 우수한 전통이다.

우웨이산의 창작의 중심에는 인체(人體)가 있다. 인자하고 듬직하면서 지혜롭고 겸용한 모습의 공자(孔子)와 안을 비워 ‘비움’의 세계관을 표현한 노자(老子), 이백(李白, 701~762), 제백석(齊白石, Qi Baishi, 1860~1957) 등 중국 성인과 명사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베아트리스(Beatrix) 여왕, 필리핀 아로요(Arroyo)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Bush) 전 미국 대통령 등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다. 그리고 난징대학살기념관(南京大虐殺紀念館) 앞에 있는 군상은 우웨이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유명한 성인, 명사, 일반인, 가족 등 5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런 작품들의 제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표정이다. 우웨이산은 인체의 모든 에너지를 표정(表情)에 집중시킨다. 그는 그 사람의 성격과 일화, 환경까지 모두 파악하고 살아 있는 분은 직접 만나 대화하면서 느낌을 받고, 표현할 인물의 형상을 눈과 마음에 생생하게 그리며 대상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찾으려 한다. 외향의 한계를 초월한 내재적인 정신적 기질과 성격적 특징을 중점적으로 표현한다. 우아하거나 결코 화려하게 표현하지 않고 전체에 흐르는 대상의 거친 외양 속에 숨어 있는 생명력을 찾아낸다. 거칠게 표현된 표면은 강렬함과 유머를 담고 있다. 우웨이산의 창조적 역량은 전통적인 순서와 방법으로 흙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정신적 해방을 얻음으로써 발휘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초월하고 그 내면적 본질을 파악할 때, 예술적 생명력이 살아난다. 그는 인물이 가지는 강렬함과 비참함 등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을 묘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중국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새로운 ‘상징성(象徵性)’과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열정적인 창작의 결과물들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성품과 영혼의 힘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표현한다. 영혼을 구현하는 우웨이산의 인물조각은 벌거벗고 외로웠던 로댕의 작품과는 다르게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우웨이산은 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동상을 제작하면서 우리 포항시와 인연을 맺었다. 생전에 우웨이산의 작업실을 방문한 박태준 명예회장은 “이게 바로 나구먼. 내가 중국에 있네!”라고 하셨다. 현재 동상은 2011년 제막하여 현재 포항공과대학교 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우웨이산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을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의 조각 작품은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성실하고 정직한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이 우아한 감정은 그의 능숙한 삶을 이끄는 감각적인 눈과 시적 영혼에서 발생한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살아 있는 이의 초상을 만들지 않는다. 중국 문화의 대표적 인물들이 우웨이산의 손과 마음에 의해 환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평탄하며 곧고 사랑스럽고 어진 ‘이직자량(易直子諒)’의 마음으로 생명과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생명력을 유지해주는 작용을 한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