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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

기념비적 인상, 김길후

  • 전시기간 2016-01-14 ~ 2016-04-03
  • 전시장소 제 1, 3, 4 전시실
  • 전시작품 평면 회화 50여점
  • 참여작가 김길후

포항시립미술관은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과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길후 작가의 기획전시를 마련하였다. 이번 기념비적 인상, 김길후은 동양적 사유세계의 대표적 색채인 검은색의 주조로 직감적이고 울림이 있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는 김길후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매체와 설치미술이 주류가 이루어지는 국제적 미술의 경향에서, 오랜 역사를 안고 있는 동아시아의 회화예술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담론을 형성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김길후 작가는 국내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로 묵묵히 작업에만 전념해 오다가 2010년부터 작업실을 중국 베이징에 옮겨 국제적인 감성을 키우고 있다. 김길후 작가는 문명의 발전이 낳은 각박한 경쟁사회 속에서 예술적 고민의 돌파구를 일상 속 평범한 민중의 모습에서 찾았다. 그는 유구한 역사 속에 자주 거론되고 있는 현자(賢者)’, 즉 중국 성인(聖人)’의 이미지를 평범한 민중들에서 발견하고 이들의 진실함에서 오늘날 진정한 현자(賢者)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름 없는 인물들의 삶에서 진실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또한, 거침없고 직감적인 붓질로 표현주의적(表現主義的)인 회화의 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길후의 그림을 특징짓는 것은 내용적인 특질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이다. 단순하면서도 직감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내는 그의 작품은 자유와 무의식을 표현하는 추상 표현주의자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작품들은 오브제의 아웃라인과 어두운 지면 위의 인물들을 휘감는 굵고 풍부한 블랙의 화필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가장 본질적인 상태의 이미지를 추출하기 위해 단순화시킴으로써 감정 상태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밑그림 없이 단 한 번에 그려 내려간 필력은 이야기 전달을 위한 절제된 표현으로 세련됨을 더한다. 붓과 못, 조각칼로 화면에 깊이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검은색 안에 많은 다른 색상을 만들어 낸다. 거대한 획이 지나간 자리에 쌓이고 있는 다양한 시간의 층위가 그가 단순히 리얼리티를 재현하고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많은걸 그려 보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는 그림들은 표면에 가해진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의 에너지가 더해짐으로써 더 많은 우연적인 회화의 깊이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김길후의 블랙 페인팅은 우울한 어둠을 벗어 던지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건져 올린다. 김길후는 통용되는 부정의 어둠이 아닌, ‘따뜻한어둠에 깔려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어머니 품 속 같은 어둠은 도시 속의 수많은 군중 안에 갇힌 외로운 인간들의 불안한 존재감, 고독, 그리고 소외를 대변하는 오브제가 된다. 짙은 블랙으로 채운 종이 위를 못으로 긁고 망치로 두들겨 바늘처럼 내리꽂히는 날카로운 선을 만들고 검게 칠한 종이의 겉 표면을 찢고 벗겨내 그 밑에 꽁꽁 숨겨져 있던 어둠의 하얀 속살과 못 자국의 상흔을 드러낸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 2차원적인 평면성의 강조 등의 작품들은 정형화된 인물이나 배경이 아닌 날것의 감정, 느낌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림을 통한 진실’, 즉 사고의 순수세계를 추구하는 작가 김길후는 희망의 모티브로서의 새와 백합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차용한다. 검푸른 파도 속으로 침잠하는 인물의 한 가운데에도 하얀 새가 날아오르고 있으며 바닥에 망연자실 무릎을 껴안고 주저앉아 있는 인물의 주위를 셀 수 없이 많은 하얀 새들이 둘러싸며 어둠은 늘 빛과 함께 오는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또한 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편, 여타의 자연에다 스스로를 동화시키고 있다. 몸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것에서는 자신의 몸을 꽃들에게 숙주로 내어줌으로써 자연과의 동화현상을 실현한다. 꽃 중에서도 특히 백합은 유년의 자아를 상징한다. 작가는 머리만큼이나 큰 꽃잎 속에 손을 집어넣기도 하고, 심지어는 꽃을 먹기도 한다. 더불어 물고기 혹은 새 형상으로 대체된 눈에서는 아마도 물고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뭍과 물이 다르지 않고,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하늘과 땅이 같은 것임을 주지시키는 듯하다.

김길후에게 있어서 블랙은 모든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감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방식이다. 신이 태초에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 듯이 인간은 어머니 자궁의 어둠 속에서 처음 잉태되어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 이처럼 어둠은 인간 존재의 시작이자 끝이며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잉태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블랙의 어두운 단면이 아닌, 그 뒤에 가려진 무수한 빛의 단면들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어서 김길후는 그 누구보다도 블랙이라는 색을 자유자재로 변주할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다. 김길후 작가의 작품은 살아 숨 쉰다. 그의 작품은 삶과 상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정직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김길후는 현대사회 문제의 답으로서 현자를 내세웠다. 하지만 현자는 달처럼 높은 곳에 머물러 있다. 나이기도 너이기도 우리이기도 한 무한한 얼굴을 가진 민중, 이 시대의 민초가 진정한 현자임을 작가는 깨닫는다. 이번 전시는 국제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역량 있는 영남작가를 발굴하여 조명전시를 개최함으로써 공립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에 그 의미가 클 것이며, 아울러 21세기 동아시아 회화에 대하여 사유해 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